[ 매드타임스 판도라토토 대기자]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서 새로운 시장이 뚫린 것도 아니고, 획기적인 기술이 나오지도 않고, 경제정책이 구체적으로 발표되지도 않고, 물가는 그대로 계속 오르고 있는데, 주가지수가 30% 이상 오른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한 친구가 물었다. 대답을 못 하고 우물거리고 있었더니, 참다못한 그가 자문자답 식으로 말했다.
“이거 일종의 ‘사보타지 효과’ 아니어요? 실제로 아무 효과도 없는 약인데, 잘 듣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그런 거 말이어요.”
심각하게 질문하는 그에게는 미안했지만,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건 ‘위약 효과’라고 하는 ‘플라세보(플래시보) 효과’라고 얘기해 주었다. 사실 이렇게 헷갈리며 쓰는 말들이 꽤 있다. 나도 이전에 '플라세보 효과'를 위의 친구와 똑같이 '사보타지 효과'라고 한동안 말했었다. TV PD로 있던 후배가 만들었던 '동상이몽'이란 프로그램을 '이구동성'이라고 한 적도 있는 등 나이가 들수록 이런 실수가 잦아진다. 동상이몽과 이구동성은 같은 글자가 두 개 있고, 의미로도 좀 연관이 되지만, 플라세보와 사보타지는 네 음절에 서구어에 기원을 두고 있고, ‘보’라는 발음이 있다는 것 빼고는 전혀 헷갈릴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헷갈리며 쓰는 말들을 보면 같은 발음도 있지만, 그보다 느낌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술을 좋아하는 티를 내려 했는지 애주가 친구 하나는 액션물로 유명한 영화배우인 스티븐 시갈을 본인도 모르게 한국에서는 모 대통령 최후 만찬 자리의 술로 알려진 시바스 리갈이라고 불러 댔단다. 국가 이름을 가지고 헷갈리는 사람들도 많다. 가나와 가봉은 두 음절에 첫 발음이 같고, 한국인에게는 타 대륙 대비 생소한 아프리카에 있다. 그래도 가나는 초콜릿, 가봉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스캔들도 일으켰으며 승합차 브랜드로도 유명했던 대통령 봉고로 연상에서 확실히 차이가 난다. 그러나 지도를 보고 두 나라를 확실하게 찍지는 못하고, 한국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축구에서 대결한 팀이 가나인지 가봉인지, 하나 더하면 기니인지 헷갈리는 이들을 봤다.
유럽에서도 그렇게 사람들이 판도라토토려 하는 대표 두 국가가 있다. 바로 스웨덴과 스위스이다. 특히 두 국가 모두의 관광 산업에 큰 고객인 미국인들이 지리 지식이 부족하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결정타로 2022년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연설 중 스웨덴을 스위스라고 잘못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라면 그런 실수에 나이 탓을 먼저 해야 하는데, 미국인들의 지리 지식 부족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의문의 1패를 당한 격이 된 스웨덴에서 2023년 10월에 스웨덴 관광청에서 스위스와 자기 나라의 확연히 구별되는 특성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영상을 공개했다.
같은 ‘뱅크(bank)’라도 스위스에서는 돈을 거래하는 은행, 스웨덴에서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의 ‘모래밭(sandbank)’을 얘기한다고 운을 띄운다. 이어 비슷한 맥락에서 스위스의 시끄러운 요들송과 값비싼 시계와 스웨덴에서 즐길 수 있는 조용함 속의 명상과 자연 속의 낚시와 같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활동들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출발 문제 정의도 확실했고, 시의성도 있었으며, 특히 유머와 반전으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자기 자랑이 지나치는 대부분 국가관광 영상의 문법을 깬 것이다. 나중에 주미 스위스 대사가 나름 개인 차원에서 반격을 시도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다. 스위스로 보면 안 하느니 못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기업 간에 판도라토토는 경우가 있다. 지난 6월의 국제도서전에서 화제를 몰고 온 인사 중의 하나인 배우이며 출판사를 운영하는 박정민이 출연한 광고에서 그 대표 사례가 나왔다. ‘삼양에 들어가서 라면 판다고 바쁜’ 여자 친구에게 불평하는 박정민에게 라면 만드는 삼양이 아니라고 여자 친구가 대놓고 말한다. 불닭면을 필두로 국내외에서 엄청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삼양식품에 편승하려는 느낌도 살짝 있다.
실제의 역사를 보면 삼양사가 창립 시기가 훨씬 앞선다. 한국 물리학계의 최고 원로라고도 할 수 있는 전설의 이태규 박사를 후원하기도 하며, 일제강점기 민족 기업으로 일찌감치 명성을 떨쳤다. 광고의 마지막 카피에서 ‘우리가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을 하는, 그래서 ‘당연해서 몰라봤다’다고 한다. B2B의 한계이기도 하나, 산업재를 하는 기업들은 고객은 아니지만 소비재로 사람들이 이름을 알아주는 기업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지금은 K-푸드의 상징처럼 잘 나가고 있으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삼양식품도 아주 큰 아픔이 있긴 했다. 한국에서 라면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독보적인 위치를 다졌으나, ‘우지 파동’에 휘말리며 후발주자에 추월당한 채, 30여 년을 보냈다. 오랜 터널을 빠져나와 지난해 영업이익과 시가총액에서 두 배 이상 후발 경쟁자를 앞섰다. 지지난해에는 ‘삼양 라운드앤드 스퀘어’로 그룹사 전체 CI를 정립했다. 네모도 나오고, 원도 나온다.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헷갈리는 이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래도 계속 정진하길 바란다.
판도라토토판도라토토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