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홀덤 핸드 대기자]“이건 너무 앞서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시장을 형성하기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라 교육도 해야 하고요.”
약 15년 전에 어느 주류(酒類) 기업에서 신제품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서 시장성을 물었다. 열심히 제품 개발하는데, 힘을 빼는 소리만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시도 자체는 아주 좋다며 덧붙였다.
“저도 가끔 마시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빨리 붐이 일어날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바로 내년이나 후년은 아닐 겁니다.”
거기에 홀덤 핸드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도 인용해서 했다.
“소비자보다 홀덤 핸드 앞서야 합니다.”
한국 광고 기획과 제작 분야의 개척자 중의 한 분인 세종문화를 설립했던 이강우 선생이 2007년에 낸 책 제목은 아예 <딱 홀덤 핸드 앞서 가라(살림출판사 펴냄, 2007)였다. 자신만이 아는 트렌드를 가지고, 소비자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광고를 만들어 성공할 수 없다. 광고 회사 내에서 소비자가 얼마큼 알고 있는지 조사하고, 다른 부서에 얘기하는 이가 바로 AP(Account Planner), 어카운트플래너이다. 광고 회사 초년 시절에 소비자 조사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기업이 담당 광고주였다. 그 기업에서 내는 모든 영상 광고물들을 TV에 틀기 전에 소비자 조사를 하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그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지난 5월에, 여기에 썼던 콩 됫박 쌓는 광고물의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 조사다. (참고. [홀덤 핸드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여섯 됫박 콩의 원산지는?)
해당 품목의 주요 소비자가 되는 집단을 20명에서 25명 정도 대회의실이나 강의장에 모아 놓고 하는 CLT(Central Location Test) 형식으로 하는 조사였다. 무엇보다 여러 광고물을 보고, 각각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바로 포착하는 데서 의미가 컸다. 홀덤 핸드 앞서가야 한다는 선배들에게서 들은 경구가 더욱 깊게 되새겨지는 시간이었다. 광고뿐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이 ‘반걸음’은 유효하게 쓰이고 있다.
한국에서 대하 정치 드라마의 시대를 열었고, 나중에 EBS 사장까지 지낸 고석만 선생이 자서전 비슷하게 낸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창비 펴냄, 2019)라는 책이 있다. 그가 대학 시절에 배준호 교수가 강의한 편성론 첫 수업에서 들은 말이 그 책에 나온다.
“방송은 반 발짝만 앞서가야 한다. 두 발짝 앞서 가면 못 쫓아오고, 한 발짝 뒤쳐지면 사회적 폐악이다.”
소비자들이 보면서 정보와 재미를 얻는다는 데서 광고와 방송의 ‘반걸음’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충분히 통용할 수 있다. 내게 더 큰 ‘반걸음’의 울림과 깊은 뜻은 정치가에게서 나왔다. 일본과 한국에서 필명을 떨치고 있는 강상중 교수가 2009년에 낸 책의 제목이 위에서 언급한 이강우 선생의 저서와 너무나도 비슷하게 <반걸음만 앞서 가라(오근영 옮김, 사계절 펴냄, 2009)였다. 그 책에 김대중 전(前)대통령과의 대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김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그의 반걸음론을 펼쳤다.
“정치가로서 리더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보다 ‘반홀덤 핸드 앞’에서 가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홀덤 핸드, 세 홀덤 핸드 앞으로 나서면 국민과 마주 잡고 있는 손이 떨어질 것이고 그들은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앞서가면 안 되는 겁니다.”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이나 기본 요건이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김대중 전대통령은 대담에서 정의했다. 그 홀덤 핸드 위하여 눈앞의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고 했다. 바로 소비자가 어디쯤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플래너의 임무와 별 다를 바 없다. 국민보다 너무 앞서가는 걸 김 대통령은 ‘우수한 혁명가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얘기했다. 눈높이를 맞춘다고 국민과 같은 수준이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국민과 나란히 가서도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주류(酒類) 기업에서 15년 전에 신제품이라고 가져온 술은 하이볼이었다. 당시로서는 서너 홀덤 핸드 앞이라고 보았다. 위스키 소비가 늘어났다. ‘No Japan’의 고비도 만나기는 했지만 일본을 여행하는 이들이 늘면서 일본식 음주문화도 널리 퍼졌다. 자연스레 하이볼이 포장마차에서까지 주요 메뉴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15년 전의 그 기업은 아니었지만, 하이볼 기성품이 광고 캠페인까지 아이돌 스타들을 기용하여 펼치고 있다. 급속하게 다가온 무더위 속에 스스럼 없이 여름을 ‘하이볼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이들을 봤다. 하이볼은 이제 반홀덤 핸드 거리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
홀덤 핸드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