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발명한 가장 매력적인 기호품 중의 하나인 담배. 담배가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물건 가운데 하나로 핍박받고 있다. 흡연자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는 지구를 오염시키는 가장 해로운 독가스 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세상이다.
애연가들을 구박하는 세력도 점차 맹위를 떨쳐가고 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각종 제도적, 행정적, 정책적 규제들을 동원해서 그들의 생존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수난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애연가들이라면 어디 무인도라도 하나 찾아내서 그들만의 낙원을 건설해야 할 판이다. 아마도 그런 신천지는 이제 지구라는 혹성에서는 발견하기 힘들 터이다. 어쩌면 순수 흡연가로만 결성된 또 하나의 원정대가 미지의 행성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 올릴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흡연을 방해하는 움직임 중에서 라이프벳와 홍보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라이프벳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리 큰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공익라이프벳의 포맷으로 방송된 금연 홍보라이프벳는 계몽의 틀 안에 갇힌 촌티 패션 일색이었다. 여느 상업라이프벳와 비교하면 아이디어와 임팩트, 기교면에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약해서 영향력을 논할 여지가 없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부당국이 위촉한 홍보대사가 나와서 구태의연하게 경고성 멘트나 읊조리는 라이프벳를 보고 경각심을 느끼는 흡연자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형태의 ‘관제 라이프벳’가 가능한 시스템의 핵심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있었다는 유력한 관측이 있다. 2000년대 전까지만 해도 ‘공익’을 주제로 하는 정부 라이프벳는 언론진흥재단이 독점 대행하는 체제였다. 일부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공익라이프벳나 정책라이프벳는 정부 부처의 의뢰를 받아 언론진흥재단이 프로덕션을 직접 선정하여 라이프벳를 제작하고 방송라이프벳진흥공사가 매체집행을 대행하는 관행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디어를 승인하는 관료들의 입김이 너무 세고 정부의 정책방향이 그대로 라이프벳 콘셉트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일방적인 고지 형식의 라이프벳에 실망해 ‘홍보가 기가 막혀~’라는 판소리 장단의 탄식을 하는 라이프벳인도 없지 않았다.
제작 시스템이 변하면 라이프벳도 변한다
이렇듯 판에 박힌 정부의 공익라이프벳가 달라졌다. 그 변화를 주도한 주체는 보건복지부였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집행하고 있는 금연 캠페인은 흡연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 담배의 해악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정부 라이프벳도 제작 시스템을 바꾸면 얼마든지 크리에이티브 해질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보건복지부가 해를 바꾸어 가며 단계별로 전개한 금연 광고는 절제되고도 세련된 영상으로 일방적인 홍보가 아닌 공감의 형성을 통한 쌍방향 소통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언론의 보도는 물론이고 각종 광고 관련 포털 사이트에서 인기검색어로 떠오르기도 했다. 또한 방송가의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도 앞 다퉈 패러디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흡연의 해악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다
1차 라이프벳 캠페인의 주제는 ‘자학’이었다. 말 그대로 흡연을 자학으로 정의내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젊은 남자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 때리는 라이프벳, 정장 차림의 말끔한 신사가 맨홀 구멍에 얼굴을 쳐 박고 있는 라이프벳, 고급스런 실내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우아한 모습의 아가씨가 탁자 유리에 얼굴을 부비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의 라이프벳. 세 편의 라이프벳에는 공통적으로 몽환적이고 음울한 배경음악이 깔리다가 마지막 장면 무렵에 간결한 자막과 내레이션이 페이드 인(fade in)된다. “한 대 피우는 중이군요. 흡연, 뇌를(폐를, 피부를) 자학하는 행위”.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이고 강력한 비유로 상징화하고 있는 것이 이 라이프벳의 성공요건이다. 간접흡연이나 니코틴의 유해성 등을 강조하는 식상한 소재도 피하면서 네거티브 어프로치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공익라이프벳에서 불문율처럼 요구되던 밝은 분위기, 긍정적 화법의 상투성을 탈피하고 있는 것도 색다른 용기로 보인다.
‘세상과의 이별’을 주제로 한 2차 라이프벳 캠페인도 이런 기조를 잘 살려가고 있다. 흡연하는 사람들의 오불관언(吾不關焉;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이야?) 심리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라이프벳이다. ‘담배 피는 것은 자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은 당신의 몫’임을 군더더기 없는 화면 전개를 통해 분명하게 강조하는 영상이다. 딸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 남편을 보내야 하는 아내, 연인을 보내야 하는 여자의 슬픔을 원 컷 원 신(one cut-one scene)의 극도로 절제된 화면 구성으로 절절히 표현해 내고 있다.

멀티 스폿(multi spot; 동시에 여러 편의 라이프벳를 제작하여 다양한 매체에 집행하는 방식)으로 방송된 1, 2차 캠페인 라이프벳는 2005년 스위스 국제라이프벳제에서 캠페인 부문 파이널 리스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차 광고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재미와 효과를 배가했다. ‘담배를 끊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신을 끊는다’는 메시지로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흡연에 대한 혐오감을 코믹과 애교, 드라마를 변주해 가면서 표현한다.
‘치아 변색’편에서는 한 남성이 매력적인 여성에게 ‘작업’을 걸려다가 여자가 웃을 때 드러난 까만 이물질이 낀 누런 치아에 기겁한다. ‘구취’편에서는 아기를 안고 이유식을 먹여주려는 아빠의 입 냄새 때문에 아기가 울어대고 ‘기억 감퇴’편에서는 연극을 하던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려 난감해 한다. 이 모든 원인이 흡연 때문이라는데 한번쯤 움찔하지 않을 강심장이 어디 있겠는가?

교통라이프벳, 크리에이티브의 실험무대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 매체도 얼마든지 크리에이티브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라이프벳도 있다. 우리가 동화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친숙한 소재를 표현의 장으로 끌어내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라이프벳 3편이 눈에 띈다.

‘흡연은 아름다움을 위협한다(Smoking hazardous your beauty)’, ‘흡연은 훨씬 더 늙어 보이게 만든다(Smoking makes you look older than your years)’, ‘흡연은 악취를 동반한다 (Smoking makes you have bad breath)’는 메시지를 담은 이 금연 캠페인은 2003년 뉴욕 페스티벌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작품이기도 하다. ‘금연 열차’라는 색다른 매체를 활용한 이 라이프벳는 백설 공주와 피터 팬,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패러디하고 있다. 어릴 적 누구나 꿈꾸어왔던 동화 속 주인공들이 흡연으로 인해 흉물스럽게 변해 버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흡연의 욕구가 사라져 버릴 지경이다.
2005년~2006년 보건복지부가 주도한 금연 홍보 캠페인의 효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해서도 일부 뒷받침되고 있다. ‘2005년 정부 주도 금연 홍보 캠페인 현황 및 평가’에 따르면, 한 해 전 방영된 금연 홍보 TV 라이프벳를 시청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금연 시도율은 7.4%가 높았고, 흡연량 감소율도 16.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 라이프벳의 새로운 기준
금연 캠페인은 공익 광고가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 소비자의 감정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정형화된 긍정적 화법에서 벗어나 강렬한 비유와 상징적 이미지로 흡연의 위험성을 강조한 점은 이전의 관제 광고와 차별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계몽 광고, 위협적 공포 소구, 일방적 홍보캠페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었다. 이랬던 금연홍보 캠페인에 새로운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노담! 캠페인: 금연 홍보의 뉴트렌드
요즘 TV나 SNS에서 “노담!”이라는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노담 캠페인은 기존의 금연 운동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통적인 금연 캠페인들이 주로 흡연의 위험성과 폐해를 강조하며 무겁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에 비해 가볍고 유쾌한 메시지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간다. ‘노(No)’와 ‘담배(담)’의 합성어인 ‘노담’이라는 이름부터 직설적이고 간결하다. 이 짧은 단어 속에는 금연 의지를 쉽게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이 담겨 있다.
이 캠페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금연이라는 주제를 더 이상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금연 캠페인에서는 검게 변한 폐,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의 모습처럼 충격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뤘다. 이는 분명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는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노담 캠페인은 밝은 색감, 유머러스한 표현, 짧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통해 이러한 부담을 덜어낸다. 금연을 강요하거나 두려움을 조장하기보다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더 쿨하고 당당한 선택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공감과 감동의 메시지로
2000년대 이후에는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예를 들어, 한 금연 라이프벳는 딸의 시선에서 아빠의 흡연을 묘사하며, 건강을 잃어가는 아빠와 멀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담배를 끊으면 가족과 더 오래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흡연자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TV 라이프벳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입 냄새가 난다”는 메시지를 코믹하게 전달하거나, 담배 없는 삶이 더 멋지고 트렌디하다는 점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 사이에서 흡연자가 “나만 왜 냄새 나지?”라고 민망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담배를 끊는 것이 더 세련된 선택임을 강조했다.
또 다른 사례로, 어린아이가 흡연자를 따라 하는 장면을 담은 광고가 있다. 담배를 피우는 부모를 따라 장난삼아 연기를 흉내 내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이 광고는 흡연이 다음 세대에 미칠 악영향을 상기시키며 부모 흡연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노담! 노담!
2020년대에 들어와 등장한 “노담!” 캠페인은 기존의 금연 캠페인과 완전히 다른 톤과 방식을 제시했다. 이 캠페인은 흡연을 단순히 건강에 해로운 행동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것을 유행에서 뒤처진 것으로 묘사하며 흡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의했다.
노담 캠페인은 MZ세대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SNS와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로, 무겁고 교훈적인 메시지보다는 가볍고 재치 있는 표현에 더 쉽게 반응한다. 노담 캠페인은 이러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SNS 밈(meme), 챌린지 형식의 콘텐츠로 금연 메시지를 확산시킨다. "노담! 쿨한 선택" 같은 슬로건은 금연을 더 이상 어렵고 지루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멋진 선택으로 재해석한다.
친근한 캐릭터와 디자인을 적극 활용하는 점도 눈에 띈다. 귀엽고 유쾌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포스터나 영상은 금연이라는 주제를 더 가볍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담배를 끊는 것이 거창한 결심이 아닌,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여기에 ‘#노담챌린지’와 같은 온라인 참여형 콘텐츠는 금연을 혼자만의 결심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으로 변화시킨다.
노담 캠페인의 성공 요인은 금연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데 있다. 금연은 더 이상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무가 아니라, 자신을 더 멋지게 가꾸는 선택으로 포지셔닝되었다. 이 캠페인은 권위적인 금연 권고 대신 친구처럼 다가가 “같이 해보자”는 친근한 태도를 취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Z세대가 선호하는 짧고 직관적인 콘텐츠로 접근하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럴 효과도 만들어냈다.
노담 캠페인은 단순한 금연 운동을 넘어 새로운 방식의 공공 캠페인 트렌드를 보여주는 사례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가벼운 언어와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메시지의 힘은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이는 공공 캠페인뿐만 아니라 모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요한 메시일수록,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노담 캠페인은 잘 보여주고 있다. SNS를 활용한 “노담 챌린지”는 또 다른 성공 요인이다. 인기 드라마의 명대사에 “노담!”을 합성하거나, 담배를 끊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짧은 영상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했다. 특히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이러한 콘텐츠가 밈처럼 퍼지며, 젊은 층이 자연스럽게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노담!” 캠페인은 단순히 메시지 전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노담 동아리”라는 학생 모임이 생겨났고, 이들은 교내에서 금연 포스터를 만들거나 금연송을 틀며 캠페인을 확장했다. 또 금연 상담 프로그램 참여율이 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공공장소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캠페인 이후 청소년 흡연율이 눈에 띄게 감소했으며, 거리에서 흡연에 대한 인식이 점차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한 흡연자는 “캠페인을 보고 담배가 더 이상 멋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금연을 결심한 계기를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환경 보호와 금연을 결합하거나, 게임 요소를 활용한 금연 프로그램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담배 꽁초가 환경에 미치는 해악을 알리거나, 금연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포인트를 쌓아 보상을 주는 앱이 출시될 수 있다.
노담 사피엔스: 뉴 라이프스타일


“노담!”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메시지를 넘어, 담배 없는 삶이 얼마나 멋지고 트렌디한 선택인지 보여준다. 부담스럽지 않게, 유쾌하고 경쾌하게 흡연노담을 멀리하자는 이 캠페인은 '노담 사피엔스'로 규정된 젊은 세대에게 금연이 하나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임을 각인시켰다. 이제 담배 없는 세상은 더 이상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니다.
이현우전직 카피라이터 / 동의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