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불토토 근무수칙] 32. 빈곤의 포르노그래피.

[레드불토토 근무수칙] 32. 빈곤의 포르노그래피.

  •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7.24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난은 컨셉이 아니고, 고통은 디자인 요소가 아니다.
레드불토토
더나은미래 사진

[ 매드타임스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여러 NGO들과 일하며, 나도 참 많이 만들었다. 굶주린 아이. 낡은 신발, 빈 그릇, 클로즈업된 아픔과 눈물. 정지화면 하나로 후원을 유도하고, 음악 한 줄로 마음을 흔들며, 가난을 팔았다. 교회가 은혜를 상품화하듯, NGO는 가난을 브랜딩 한다. 때로는 '나눔의 기쁨'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지금 이 아이에게 당신의 1,000원이 필요합니다'라는 자막을 올리며.

'빈곤의 포르노'는 마케터 입장에선 꽤 좋은 먹잇감이다. 감정은 언제나 성과를 동반하고, ‘스토리’라 불리는 슬픔은 팔린다. 하지만 레드불토토가 끝나고 화면이 꺼졌을 때, 남는 건 묘한 뒷맛이다. MSG처럼. 인공적인 감동, 설계된 연민. 비어 있는 뚝배기 바닥에 맛을 입힌 기분. 손은 움직였지만 마음이 멈췄던 순간들. 그런 스토리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단지 소비하게 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된다. 때론 모두에게 익숙한 이 상황이 언제부터인가 나는 매우 불편했다.

레드불토토
뉴욕타임즈 사진

광고는 현실을 다룬다. 사람을 감동시키기 전에, 먼저 존중해야 한다. 가난은 컨셉이아니고, 고통은 디자인 요소가 아니다. 우리가 만드는 건 광고지만, 다루는 건 사람이다. 그러니 다음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슬픔을 소비하는 문장은 의심할 것'.

'도움을 요청하되, 시선을 강요하지 말 것'.

'고통을 연출하게 만들지 말 것.'

'눈물을 자극으로 쓰지 말 것.'

좋은 의도보다 정직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할 일은 감동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닿을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윤리적이어야 한다. 연출된 가난을 필요로 하지 않는 캠페인을 상상하자. 눈물 없이도 따뜻한 광고, 연민 없이도 설득력 있는 전달. 우리는 그걸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광고. 우리 또한 마케터나 광고인 이전에, 1,0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배고픔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한 빈곤을 겪고 있는 시민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인즈 베커 Heinz Becker

30년 가까이 전 세계 레드불토토를 떠돌며 Copy Writer, Creative Director, ECD, CCO로 살았다. 지휘한 캠페인 수백개, 성공한 캠페인 수십개, 쓴 책 3권, 영화가 된 책이 하나 있다. 2024년 자발적 은퇴 후, 브런치와 Medium에 한글과 영어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가끔은 강의와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